칼 로저스의 마지막 모험, 75세에 시작한 '완전히 기능하는 삶'

1977년 라호야, 예상치 못한 전화
1977년 겨울, 캘리포니아 라호야의 한 해변가 집. 75세의 칼 로저스(Carl Rogers)는 따뜻한 차를 마시며 태평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은퇴 후 평온한 노년을 보내고 있던 그에게 예상치 못한 전화가 걸려왔다.
"로저스 박사님, 브라질에서 있을 워크숍에 참석해주실 수 있나요? 800명이 참석할 예정입니다."
75세. 대부분의 사람들이라면 "이제 그만 쉬어야지"라고 생각할 나이였다. 하지만 로저스는 다르게 생각했다. 그는 30년 전 자신이 정의한 '완전히 기능하는 사람(Fully Functioning Person)'의 네 가지 특성을 떠올렸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지금 완전히 기능하고 있는가?"
첫 번째 특성, 경험에 대한 개방성
1978년 브라질 상파울루. 로저스는 생전 처음 남미 대륙을 밟았다. 800명의 참가자들 앞에서 그는 솔직하게 고백했다.
"저는 포르투갈어를 한 마디도 할 줄 모릅니다. 여러분의 문화도 잘 모르죠. 하지만 그것이 오늘 우리가 함께 배울 이유입니다."
젊은 시절의 로저스라면 철저히 준비했을 것이다. 언어도 배우고, 문화도 연구했을 것이다. 하지만 75세의 로저스는 다른 접근을 택했다. 불확실함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경험에 열린 마음으로 뛰어들었다.
1940년대, 로저스가 '경험에 대한 개방성'을 처음 정의했을 때의 일이다. 한 내담자가 상담 중에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당시 정신분석학 기반의 상담에서는 감정 표출을 억제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로저스는 그 순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눈물이 나는 것도 괜찮습니다. 지금 느끼시는 모든 감정이 소중합니다."
그 순간 로저스는 깨달았다. 치유는 경험을 차단할 때가 아니라, 온전히 받아들일 때 일어난다는 것을.
두 번째 특성, 실존적 삶
브라질에서 돌아온 로저스는 더욱 왕성해졌다. 79세가 되던 1981년, 그는 소련(현 러시아)으로 향했다. 냉전 시대, 공산주의 국가에 인본주의 심리학을 전파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모스크바에서 로저스는 소련의 심리학자들과 만났다. 그들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자본주의 심리학이 우리에게 무슨 도움이 됩니까?"
로저스는 그 자리에서 서로 다른 이념에 대해 논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순간에 충실했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모두 같은 인간입니다. 정치적 신념과 관계없이, 우리 모두는 이해받고 싶고, 존중받고 싶어합니다."
그의 진정성 있는 태도는 소련 심리학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며칠 후, 한 심리학자가 그에게 말했다.
"당신은 매 순간을 진실하게 살고 계시는군요."
이것이 바로 '실존적 삶'이었다. 과거의 성취나 미래의 계획에 얽매이지 않고,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몰입하는 삶.
세 번째 특성, 자유로움
1982년, 80세의 로저스는 또 다른 도전에 직면했다. 아일랜드와 영국에서 개신교도와 가톨릭교도 간의 갈등 해결을 위한 워크숍에 요청받은 것이다.
주변 사람들은 만류했다. "너무 위험합니다. 게다가 종교 갈등은 심리학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하지만 로거스는 자유롭게 선택했다.
영국 북아일랜드의 수도인 벨파스트에 도착한 로저스는 양측 대표들을 만났다. 처음에는 서로를 바라보지도 않던 그들이었다. 로저스는 어떤 해답도 제시하지 않았다. 대신 각자가 자유롭게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었다.
3일 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한 개신교 목사가 가톨릭 신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우리는 적이 아니라 같은 고통을 겪은 사람들이었네요."
로저스는 회고했다.
"내가 그들에게 해답을 주려 했다면 실패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스스로 선택할 자유를 주었을 때, 변화가 일어났다."
네 번째 특성, 창조성
1987년 2월 4일, 로저스의 85번째 생일. 그는 특별한 선물을 받았다. 바로 자신이 진행한 '평화 프로젝트'가 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른다는 소식이었다.
하지만 로저스에게 더 중요한 것은 다른 곳에 있었다. 그날 그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평화를 위한 워크숍'을 전 세계로 확산시키는 것이었다. 85세의 나이에도 그의 창조적 에너지는 멈추지 않았다.
1940년대 중반, 로저스가 처음 '내담자 중심 치료'를 제안했을 때 학계는 발칵 뒤집혔다. "치료사가 해석도 조언도 하지 않는다면, 그게 무슨 치료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하지만 로저스는 창조적이었다. 기존의 틀을 깨고, 완전히 새로운 접근법을 만들어냈다. 그 결과 인본주의 심리학이라는 '제3의 힘'이 탄생했던 것이다.
완전히 기능하는 삶의 비밀
1987년 2월 28일, 칼 로저스는 8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마지막 10년은 가장 모험적이고 창조적인 시기였다. 75세에 브라질로, 79세에 소비에트로, 80세에 아일랜드로 향했던 그의 여정.
그의 장례식에서 딸 나탈리는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는 죽는 순간까지 완전히 기능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새로운 경험에 열려 있었고, 매 순간에 충실했으며, 자유롭게 선택했고, 끝까지 창조적이었습니다."
로저스가 1950년대에 정의한 '완전히 기능하는 사람'의 네 가지 특성은 다음과 같다.
- 경험에 대한 개방성 - 두려워하지 말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자
- 실존적 삶 - 과거와 미래에 매여 있지 말고 지금 이 순간을 살자
- 자유로움 - 외부의 기대가 아닌 내면의 목소리에 따라 선택하자
- 창조성 - 기존의 틀을 깨고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내자
이 네 가지는 단순한 이론이 아니었다. 로저스 자신이 평생에 걸쳐 실천한 삶의 방식이었다. 2025년 오늘,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다. "나는 완전히 기능하고 있는가?" 나이는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부터 시작하는 용기다.
85세에 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른 로저스처럼, 완전히 기능하는 삶에는 나이 제한이 없다. 오늘부터 시작해도 늦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