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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6가지 방패: 방어기제 이야기

bogibooks 2025. 7. 17. 12:15
"방어기제는 마음의 방패이다. 하지만 영원히 방패 뒤에 숨어있을 수는 없다."
- 안나 프로이트

 

1892년 비엔나, 안나 프로이트의 관찰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딸 안나 프로이트는 아버지의 서재에서 환자들을 관찰하며 흥미로운 발견을 했다. 사람들이 고통스러운 현실을 마주했을 때, 마치 중세 기사가 몸을 방어하기 위해 방패를 드는 것처럼 마음을 위해 자동으로 '방어막'을 친다는 것이었다.

 

"아버지, 사람들이 진실을 피하는 방법이 참 다양하네요."

 

그러자 프로이트는 파이프 담배를 한 모금 빨고는 미소를 지었다.

 

"안나야, 그것이 바로 인간 정신의 놀라운 점이지. 마음은 절대 무력하지 않다. 고통이 너무 클 때는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법을 찾아내거든. 마치 면역 체계가 병균을 막아내듯이 말이야."

 

프로이트는 책상 위의 체스 말들을 가리키며 계속했다.

 

"하지만 이 방어들이 너무 견고해지면 문제가 생긴다. 성에 갇힌 공주처럼 안전하지만 세상과 단절되어 버리지. 우리의 임무는 환자들이 이 방어막을 적절히 사용하도록 돕는 것이란다"

 

이 날의 경험을 통해 안나는 마음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하는 6가지 방패를 발견했다. 이는 훗날 '방어기제' 이론의 토대가 된다. 

 

 

첫 번째 방패: 억압 - 기억 상실

민준은 회사에서 인정받는 실력자였다. 그런데 최근 이상해졌다. 대학 시절 이야기만 나오면 머릿속이 하얗게 되었다.

 

"민준아, 너 대학 때 그 교수한테 혼났던 거 기억나? 프로젝트 발표에서..."

"아...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사실 민준은 대학 4학년 때 졸업작품 발표를 완전히 망쳤던 트라우마가 있었다. 그날의 굴욕감과 절망감이 너무나 컸기 때문에, 그는 그 날의 폐배감을 기억의 저 깊숙한 곳에 밀어넣어 버렸다.

 

견디기 힘든 감정이나 기억을 무의식의 지하실에 가둬버리는 것. 이것이 바로 억압이라는 방어기제다. 민준은 의식적으로 아픈 기억을 애써 잊으려 한 것이 아니다. 마음이 알아서 그 고통을 '없던 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억압된 기억은 완전히 사라지는 것 아니다. 중요한 발표를 앞두면 원인 모를 불안감이 엄습했고, 평가받는 상황에선 과도하게 긴장했다. 마치 지하실에 갇힌 괴물이 때때로 문을 두드리는 것처럼.


두 번째 방패: 거부 - 현실 부정

현정은 회사의 구조조정 소식을 들었다. 동료들이 하나둘 구조조정 명단에 오르는 상황에서도 그녀는 태연했다.

 

"설마 나까지야... 내가 얼마나 일을 잘하는데."

 

사실 최근 회사의 실적은 최악이었고, 그녀가 몸 담고 있던 부서는 그 중에서도 더 최악이었다. 동료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직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현정은 그런 모습엔 아랑곳하지 않고 다음달에 떠날 휴가 계획에 마음이 바쁘다.

 

현정의 예처럼 '거부'는 '고통스러운 현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방어기제'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 "설마 내게 그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거부는 특히 갑작스러운 충격 상황에서 자주 나타난다. 가족의 죽음, 연인의 배신, 질병 진단 등을 받았을 때 "이건 꿈이야", "잘못된 거야"라고 반응하는 것이 바로 '거부' 인 것이다. 현정에게 하루 아침에 직장을 잃게 되는 해고라는 현실은 받아들이기에 너무 큰 충격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그녀는 이를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 20년 넘게 다닌 회사에서 쫓겨난다는 것은 그녀의 정체성을 뒤흔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세 번째 방패: 투사 - 책임 전가

박성호 팀장이 담당하는 영업팀의 이번 분기 실적이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월간 영업회의에서 그는 뻔뻔하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이번 실적 부진은 완전히 마케팅팀 잘못입니다. 광고가 엉망이었어요. 그리고 고객서비스팀에도 문제가 있어요. 우리가 아무리 영업을 잘해도 백업 부서에서 발목을 잡으니까..."

 

회의실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모든 부서가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는데, 박팀장은 자신의 실책은 덮고 남탓으로만 일관했다. 

 

'투사'는 이처럼 '자신의 문제나 나쁜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는 방어기제'다. 자신의 무능함을 인정하기 어려우니까, 그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투사는 사실 우리 일상에서 매우 흔하게 접하는 현상이다. 시험을 못 친 학생이 "문제가 너무 어려웠어"라고 변명하는 것. 연애에 실패한 남자가 "요즘 여자들이 너무 이상해" 라고 하는 것, 그리고 사업에 실패한 사람이 자신의 무능은 생각지 않고 "정부 정책이 잘못됐어"라며 실패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박팀장의 경우, 사실 자신의 영업 실력이 부족하다는 걸 스스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인정함으로 인해 받게 될 자존감의 상처는 감당할 수 없었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그 책임을 다른 부서에 떠넘긴 것이다.


네 번째 방패: 퇴행 - 신입사원 김지우의 어린아이 모드

지우씨는 대학때까지 똑똑하고 성숙한 학생이었다. 하지만 직장생활을 하게 되면서 그에 대한 평가가 달라졌다. 상사에게 혼나거나 업무가 복잡해지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으앙... 이거 너무 어려워요... 못 하겠어요..."

 

같이 입사한 동기들이 보기에도 당황스러웠다. 평소 침착하던 그녀가 갑자기 5살 아이처럼 행동하는 것이었다. 심지어 회사 화장실에서 울기까지 하는 것이 아닌가.

 

이처럼 '퇴행'은 '현재의 발달 단계에서 이전의 더 단순한 단계로 후퇴하는 방어기제'다. 복잡하고 어려운 현실을 피해 어린 시절의 안전한 상태로 돌아가려는 것이다.

 

지우씨의 경우, 직장 생활의 스트레스를 혼자 감내하기 어려웠다. 성인으로서의 책임감과 업무 부담을 견디기 힘들어서, 무의식적으로 어린 시절의 안전한 상태로 퇴행했다고 볼 수 있다. 퇴행은 의외로 흔한 현상이다. 예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만화나 게임에 빠지는 사람이나 힘들 때 부모님에게 응석부리는 사람을 쉽게 접할 수 있다. 


다섯 번째 방패: 치환 - 엉뚱한 분노

윤태식 과장은 오늘 부장에게 호되게 혼났다. 프로젝트 지연에 대한 책임을 물으며 앞으로 더 주의하라는 경고까지 받았다. 하지만 그는 부장에게 한 마디도 반박하지 못했다. 그날 집에 돌아온 태식은 평소와 달랐다.

 

"야! 신문을 왜 이렇게 어지럽게 놔뒀어!"

"당신, 설거지도 제대로 안 하고!"

"애들아, 조용히 해! 아빠 피곤한 거 안보여!"

 

가족들은 당황했다. 평소 온화하기만 하던 아빠가 드닷없이 화를 내고 있었다. 사실 태식은 부장에게 화가 나 있었지만, 권위적이고 인사고과를 쥐고 있는 부장에게 화를 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그 분노가 가족들에게 향한 것이다.

 

'치환'은 '원인을 제공한 대상에게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다른 상대적으로 약하고 안전한 대상에게 발산하는 방어기제'다. 마치 화살이 원래 목표물을 맞히지 못하고 다른 곳에 꽂히는 것과 같다. 치환은 권력 관계에서 특히 자주 나타난다. 예를 들어 부모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동생에게 푼다거나, 학교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애완동물에게 푸는 식이다. 


여섯 번째 방패: 합리화 - 그럴듯한 변명

수진씨는 디자인 공모전에서 떨어졌다. 3개월 동안 밤새워 준비한 작품이었는데, 결과는 장려상도 받지 못했다. 친구들이 위로하자 수진은 태연하게 말했다.

 

"사실 이번 공모전 심사위원들이 너무 보수적이었어. 내 작품이 너무 트렌드에 앞서 나가서 그들이 이해하지 못한 거 같아. 그리고 애초에 공모전 자체가 정치적이잖아. 이미 사람 정해 놓고 요식행위로 하는 거 아니야? 차라리 안 뽑힌 게 다행이야. 나는 이런 식으로 성공하고 싶지 않거든."

 

'합리화는 자신의 실패나 부족함을 그럴듯한 이유를 들어 정당화하는 방어기제'다. 진짜 이유는 받아들이기 어려우니까, 자존감을 보호하기 위해 그럴듯한 변명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합리화 역시 우리 일상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방어기제다. 살을 못 빼는 이유를 "내 체질이 특별해"라든지, 연애를 못 하는 이유에 대해 "요즘 사람들이 너무 계산적이야" 라고 스스로 위안을 찾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다. 수진의 경우 역시, 자신의 실력 부족을 인정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외부 요인들을 들어 자신의 실패를 합리화한 것이다.


방어기제 이해

다양한 상황에서 나타나는 방어기제 6가지를 살펴보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방어기제가 '나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것들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개발한 생존 전략이다. 다만 과도하게 사용하면 현실 적응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안나 프로이트가 발견한  억압, 거부, 투사, 퇴행, 치환, 합리화 라는 6가지 방패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는 모두 이 방패들을 사용하며 살아간다. 중요한 것은 그 방패들을 적절히 사용하는 것이다. 방어기제를 이해하면 자신과 타인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때로는 방패를 내려놓고 현실과 정면으로 마주할 용기를 가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