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속의 그림자: 역전이의 위험한 유혹
"역전이를 인정하고 관리하는 것이 상담자의 성숙함을 보여준다."
- 산도르 페렌치
1909년 부다페스트, 페렌치의 발견

산도르 페렌치(Sándor Ferenczi)는 프로이트의 제자이자 동료였다. 그는 부다페스트에서 정신분석 치료를 하며 이상한 현상을 발견했다.
"선생님, 저에게 흥미로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페렌치는 비엔나를 방문했을 때 프로이트에게 말했다.
"환자를 분석하던 중 제가 환자에게 강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마치 제 어머니를 보는 것 같은... 이것은 환자가 저에게 느끼는 전이와는 반대인 것 같습니다."
프로이트는 흥미롭게 들었다.
"페렌치, 그것은 중요한 발견일 수 있네. 분석가의 무의식도 치료 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뜻이지."
페렌치는 1909년 논문에서 이 현상을 '역전이(Countertransference)'라고 명명했다. 그는 분석가가 내담자에게 무의식적으로 투사하는 감정이나 반응이 분석 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지적했다.
위험한 공감
김소영(34세, 심리상담사)은 5년 경력의 전문 상담사였다. 그날 새로 온 내담자 민지씨를 만났다.
"상담사님, 저는... 어머니가 너무 힘들어요. 제가 뭘 해도 만족해하지 않으세요."
민지의 말을 들으며 소영의 가슴이 뜨거워졌다. 마치 자신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았다.
"정말... 힘드셨겠어요. 저도 어머니가..."
소영은 말을 멈췄다. 상담사가 자신의 이야기를 할 뻔했다. 상담이 끝난 후, 소영은 혼란스러웠다. 평소보다 훨씬 감정적이었고, 민지를 보호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심지어 민지의 어머니에게 화가 났다. 이것이 바로 역전이다. 소영은 자신의 어머니와의 갈등을 민지에게 투영하고 있었다. 상담자가 과거 타인(어머니)에게 느꼈던 감정이 내담자에게 옮겨진 것이다.
해결책 1: 자기탐색과 지속적 점검
소영은 그날 밤 자신의 감정을 돌아보았다.
"왜 민지를 보며 그렇게 감정적이 되었을까? 내 어머니와의 관계가 영향을 미쳤구나."
소영은 상담 일지에 자신의 감정 변화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상담 전 감정: 평온, 집중
상담 중 감정: 분노, 보호 욕구, 과도한 공감
상담 후 감정: 혼란, 감정적 소진
이런 자기탐색과 지속적 점검을 통해 소영은 자신의 역전이 패턴을 파악할 수 있었다. 특히 '권위적인 부모' 이야기를 하는 내담자들에게 과도하게 반응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해결책 2: 교육분석
소영은 자기 탐색과 지속적인 점검을 통해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고 동료 상담사에게 교육분석을 받기로 했다.
"소영 선생님, 언제부터 진로 상담에서 이렇게 개입하게 되셨나요?"
"글쎄요... 생각해보니 누군가에게 억압받고 있는 내담자들에게 유독 그런 것 같아요."
교육분석을 통해 소영은 자신의 감정 근원을 확인했다:
- 20대 시절의 좌절: 엄마의 반대로 음악가 꿈 포기
- 미해결 감정: 후회, 분노, 아쉬움
- 대리 만족 추구: 내담자를 통한 간접 성취
6개월간의 교육분석 후, 소영은 자신의 미해결 감정을 정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내담자의 선택을 존중하는 진정한 상담자가 되었다.
해결책 3: 지도와 감독
신입 상담사인 지연은 같은 또래 여성 내담자들에게 과도하게 감정을 이입하는 문제가 있었다.
"지연씨, 이번 주 상담은 어떠셨나요?"
지연은 심리학과 교수님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교수님, 제가 너무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것 같아요. 특히 연애 문제로 고민하는 내담자들에게..."
지도와 감독을 통해 지연은 실시간으로 자신의 역전이를 점검받을 수 있었다:
- 주 1회 수퍼비전: 상담 과정 점검
- 사례 발표: 동료들의 객관적 시각 확인
- 롤플레이: 적절한 거리 유지 연습
지연은 이를 통해 내담자와 적절한 심리적 거리를 유지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다.
해결책 4: 타 상담자에게 의뢰
40대 상담사인 민수는 알코올 중독 환자인 김철수씨를 6개월간 상담했다. 하지만 상황이 점점 악화되고 있었다. 철수씨를 볼 때마다 민수는 알코올 중독으로 가정을 파탄낸 아버지가 떠올랐다. 그럴 때마다 분노와 실망감이 계속 올라왔다.
"철수씨, 정말 이렇게 살면 안 되는 거 아시죠?"
정민수의 목소리에는 감정이 섞여 있었다. 상담은 점점 설교가 되어갔다. 어느 날, 민수는 용기를 냈다.
"철수씨, 죄송합니다. 제가 지금 선생님께 최선의 도움을 드리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더 적합한 전문가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타 상담자에게 의뢰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하지만 내담자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한 전문가적 판단이었다. 새로운 상담사와 만난 철수는 더 나은 치료 관계를 형성할 수 있었다.
역전이는 상담자의 성장 동력
페렌치가 110년 전 발견한 '역전이' 개념은 오늘날에도 매우 중요하다. 상담자가 자신의 그림자를 인식하고 관리할 때, 비로소 내담자에게 진정한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역전이를 관리하는 것은 전문가로서의 기본 윤리다. 그리고 때로는 역전이가 내담자를 더 깊이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되기도 한다. 거울 속의 그림자를 외면하지 말고, 용기를 내어 마주해보자. 그것이 진정한 치유자가 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