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같은 삶의 철학

왜 지금, '개처럼' 살아야 하는가

bogibooks 2025. 7. 23. 09:38

 

 

평범한 월요일 아침의 깨달음

지난해 어느 월요일 아침, 나는 출근길 지하철에서 한 마리의 길고양이를 보았다. 지하철 역사 계단 모퉁이에서 햇볕을 받으며 늘어져 있던 고양이는 출근 시간, 러시아워의 소음과 분주함 속에서도 완전히 평온해 보였다. 사람들은 모두 어디론가 바삐 향하고 있었지만, 그 고양이만은 망부석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미 자신이 있어야 할 곳에 있었다.

 

순간 나는 문득 깨달았다.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가 무언가를 향해 끊임없이 달려가고 있지만, 정작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왜 그토록 급하게 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것을. 스냅사진과 같은 한 장면이었지만 그 고양이가 보여준 것은 단순한 게으름이 아니라, 현재에 온전히 집중하는 순간에 순간에 대한 통찰이었다. 

 

 

성공의 사다리에서 내려온 사람들

최근 들어 '번아웃'이라는 단어가 일상어가 되었다. 직장에서, 학교에서, 심지어 육아와 가정생활에서까지 사람들은 탈진 상태다. 2023년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성인 10명 중 7명이 일상적으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답했다. 우리는 성공하기 위해, 인정받기 위해,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지만, 정작 그 노력이 우리를 더욱 불행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친구 하나가 이렇게 말했다. "매일 아침 일어나서 출근하는 것 자체가 전쟁 같어. 지하철 자리 경쟁부터 시작해, 회사에서는 성과 경쟁, 퇴근 후에는 자기계발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경쟁이 기다리고 있지,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네"

 

이런 고민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서구 사회에서는 이미 '그레이트 레지그네이션(Great Resignation)' 이라는 현상이 나타났다. 코로나19 를 계기로 수많은 사람들이 기존의 삶의 방식에 의문을 품고, 자발적으로 직장을 그만두거나 삶의 방향을 바꾸고 있다.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더 많은 돈이나 더 높은 지위가 아니라, 더 의미 있고 자유로운 삶이라고 한다.

 

 

고대 철학자들의 급진적 선택

이런 현상을 보면서 나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디오게네스를 떠올렸다. 기원전 4세기, 그는 당시 그리스 사회의 모든 관습과 가치를 거부하고 항아리에서 살았다. 사람들은 그를 '개 같은 인간'이라고 불렀지만, 그는 오히려 그 별명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개처럼 솔직하고, 개처럼 자유롭고, 개처럼 현재에 충실하게 살겠다는 것이었다.

 

비슷한 시기 중국에서는 장자가 세상의 모든 구분과 판단을 넘어선 자유로운 삶을 꿈꾸었다. 그는 나비와 자신을 구분하지 않는 꿈을 꾸었고, 물고기의 즐거움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장자에게 진정한 자유는 사회적 성공이나 물질적 풍요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존재 상태 그 자체였다.

 

이 두 철학자가 공통적으로 보여준 것은 '덜어내는 삶'의 지혜였다. 디오게네스는 물질을 덜어내고, 장자는 판단을 덜어내고, 두 사람 다 사회적 기대를 덜어냈다. 그리고 그렇게 덜어낸 자리에서 진정한 자유를 발견했다.

 

 

나의 '개같은' 실험

나 역시 몇 년 전부터 작은 실험을 시작했다. 먼저 물건을 줄였다. 옷장에서 1년 이상 입지 않은 옷들을 정리하고, 책장에서 다시 읽지 않을 책들을 나눔했다. 처음에는 아까웠지만, 점차 공간이 비워질수록 마음도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다음으로는 관계를 정리했다. 의무감으로 만나는 사람들, 에너지를 소모시키는 만남들을 과감히 줄였다. 대신 정말 소중한 사람들과 더 깊이 있는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SNS도 대부분 정리했다. 남들의 화려한 일상을 보며 느끼던 상대적 박탈감에서 벗어나니, 나만의 소박한 일상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다.

 

가장 어려웠던 것은 내면의 욕망을 덜어내는 일이었다. '더 많이, 더 빨리, 더 높이'라는 끊임없는 욕구를 내려놓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씩 연습하면서, 지금 이 순간에 만족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 결과 연봉도 줄고 씀씀이도 줄었지만, 마음은 훨씬 풍요로워졌다. 매일 아침이 전쟁 같지 않았고, 작은 것들에서 기쁨을 느낄 수가 있었다. 무엇보다 '남들 눈에 어떻게 보일까'라는 걱정에서 조금씩 자유로워지고 있다.

 

 

왜 하필 '개'인가

"왜 하필 개인가?"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개라는 표현이 다소 도발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개만큼 순수하고 자유로운 존재가 또 있을까? 개는 어제 일을 후회하지 않고, 내일 일을 걱정하지 않는다.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좋으면 꼬리를 흔든다. 그들에게는 가식이 없고, 체면 따위는 더더욱 없다.

 

물론 우리가 완전히 개처럼 살 수는 없다. 우리에게는 사회적 책임이 있고, 미래에 대한 계획도 필요하다. 하지만 개가 보여주는 현재 순간에 대한 몰입, 솔직함, 자연스러움은 분명 우리가 배울 만하다.

 

디오게네스가 '개 같은 철학자'라는 별명을 자랑스럽게 여긴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개의 순수함과 자유로움을 인간의 삶에 적용하고자 했다. 사회의 허위와 가식을 버리고, 자연스러운 본성대로 살고자 했다.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앞으로 이 공간에서 나는 현대인들에게 '다른 방식의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끊임없는 경쟁과 성취 압박에 지친 우리에게, 고대 철학자들이 보여준 '덜어내는 삶'의 지혜를 전하고자 한다.

 

하지만 여기에 나는 단순히 세상을 등지고 은둔하자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지혜롭게, 더 자유롭게 세상과 관계 맺는 방법을 찾아보자는 제안이다. 디오게네스와 장자가 보여준 것처럼, 진정한 자유는 도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바른 이해에서 나온다.

 

우리는 여전히 직장에 다니고, 가정을 돌보고, 사회적 의무를 다해야 한다. 하지만 그 모든 일을 하면서도 내면의 자유를 지킬 수 있다. 성과에 매몰되지 않으면서도 최선을 다할 수 있고, 경쟁하면서도 마음의 평화를 잃지 않을 수 있다.

 

물론 변화는 쉽지 않다. 기존의 생활 패턴을 바꾸는 것, 사회적 기대에서 벗어나는 것, 내면의 욕망을 다스리는 것 모두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작은 실험부터 시작하면 된다. 하루 10분만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하늘을 보거나, 일주일에 한 번은 아무 계획 없이 산책을 해보거나, 한 달에 한 번은 정말 필요 없는 물건을 정리해보는 것부터 말이다.

 

이 공간에서 나는 그런 작은 실험들을 위한 나침반 역할을 하고자 한다. 고대 철학자들의 지혜를 현대적으로 해석하여, 오늘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들을 제시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