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수용소에서 피어난 치유의 철학, 프랑클의 세 가지 상담 원리
모든 것을 빼앗길 수 있어도,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자유만큼은 빼앗을 수 없다
- 빅토르 프랑클(Viktor Frankl)

실존주의 상담의 세 가지 원리: 빅토르 프랑클의 깨달음
1942년 9월, 비엔나의 한 정신과 의사가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의 철조망 너머로 사라져갔다. 그의 이름은 빅토르 프랑클(Viktor Frankl). 그는 가방 속에 완성된 원고 하나를 숨겨 가려 했지만, 입소 과정에서 모든 소지품을 빼앗겼다. 그 원고는 훗날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제목으로 세상에 나올 로고테라피의 초기 이론이었다.
수용소에서 프랑클은 놀라운 것을 발견했다. 같은 극한 상황에서도 어떤 사람은 절망에 빠져 포기했지만, 어떤 사람은 끝까지 인간다움을 잃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차이는 무엇이었을까?
첫 번째 깨달음: 비도구성의 원리
어느 날, 프랑클은 한 동료 수감자가 자살을 결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사람에게 다가가 프랑클이 한 말은 의외로 단순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그는 복잡한 심리학 이론을 늘어놓지도,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도 않았다. 단지 그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주었을 뿐이다. 몇 시간 후, 그 동료는 자살 계획을 포기했다.
프랑클은 깨달았다. 상담이란 기술적 도구로 문제를 '고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간은 고장 난 기계가 아니다. 각자의 내면에는 이미 치유의 힘이 있고, 상담자는 그 힘이 발현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제공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이것이 실존주의 상담의 첫 번째 원리, '비도구성의 원리'다. 상담자가 지시하고 조작하려 들면, 내담자의 고유한 존재는 가려지고 만다.
두 번째 깨달음: 자아중심성의 원리
수용소에서 프랑클이 만난 한 젊은 수감자는 매일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선생님, 저는 언제 여기서 나갈 수 있을까요?" 하지만 어느 날, 그 질문이 바뀌었다.
"선생님, 이 상황에서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외부 상황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청년의 관점이 변했다. 외부에서 자신에게 무엇을 해줄지에서, 자신이 이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로 말이다.
프랑클은 이를 통해 깨달았다. 진정한 변화는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라도,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의미를 부여할지는 오롯이 개인의 선택이다.
칼 로저스(Carl Rogers)가 1940년대에 주창한 '내담자 중심 치료'도 같은 맥락이었다. 로저스는 "사람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상담자의 역할은 그 잠재력이 발현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지, 대신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이 아니다.
세 번째 깨달음: 만남의 원리
1945년 4월, 해방 직전 수용소에서 프랑클이 경험한 일이다. 한 나이든 수감자가 그에게 다가와 말했다. "선생님, 저는 내일 죽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선생님과 이야기하고 있는 이 시간만큼은 살아있음을 느낍니다."
그 순간 프랑클은 전율했다. 과거의 트라우마도, 미래의 불안도 아닌, 바로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만남의 힘을 실감한 것이다.
마르틴 부버(Martin Buber)는 이를 'I-Thou' 관계라고 불렀다. 나와 너가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주체로서 만나는 순간, 그 만남 자체가 치유가 된다는 것이다. 1923년 부버가 『나와 너』를 출간했을 때, 많은 심리학자들이 이 개념에 주목했다.
상담실에서도 마찬가지다. 내담자가 과거의 상처나 미래의 걱정에 갇혀 있을 때, 상담자는 "지금 이 순간 당신은 어떤 느낌인가요?"라고 묻는다. 그 순간, 내담자는 자신이 살아있는 존재임을, 변화할 수 있는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살아있는 원리들
프랑클이 수용소에서 풀려난 후 9일 만에 완성한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전 세계 30개 언어로 번역되어 1,200만 부가 팔렸다. 그 책에는 극한 상황에서 발견한 인간 정신의 불굴함이 담겨 있었다.
현대의 다양한 상담 현장에서도 이 세 가지 원리는 여전히 살아 숨쉰다. 상담자는 도구가 아닌 존재로서, 내담자의 주관적 경험을 중심으로, 지금 이 순간의 만남을 통해 치유의 길을 함께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