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같은 삶의 철학

털 뽑힌 닭 한 마리로 플라톤을 굴복 시킨 남자

bogibooks 2025. 7. 31. 20:44

 

 

플라톤을 놀라게 한 한 마디

 

기원전 4세기 아테네, 아고라 광장. 위대한 철학자 플라톤이 제자들과 함께 걸으며 인간의 본질에 대해 토론하고 있었다. "인간은 털이 없는 두 발 동물이다"라는 그의 정의에 제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한 남자가 닭털을 뽑은 채 나타나 외쳤다. "여기 플라톤의 인간이 있다!"

 

그 남자는 디오게네스였다. 아테네에서 가장 존경받는 철학자 앞에서 털 뽑힌 닭을 들고 조롱하는 이 장면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었다. 그것은 기존 철학계에 던진 가장 강력한 도전장이었다.

 

 

관념과 현실 사이의 충돌

플라톤의 철학은 아름다웠다. 이데아의 세계, 완벽한 형태들의 영역, 그리고 그 그림자에 불과한 현실 세계. 그의 이론은 체계적이고 논리적이었으며, 후대 서양 철학의 토대가 되었다. 하지만 디오게네스가 보기에 플라톤의 철학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다. 바로 삶과 괴리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인간은 털이 없는 두 발 동물이다"라는 정의 자체가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이런 식의 추상적 정의가 실제 인간의 삶에 어떤 도움이 되느냐는 것이었다. 디오게네스는 털 뽑힌 닭을 통해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당신의 정의대로라면 이 닭도 인간이군요. 그런데 이것이 진정 인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까?"

 

우리는 종종 디오게네스와 같은 상황에 처한다. 회사에서 '혁신적 사고'를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기존 방식을 고수하거나, '워라밸'을 외치면서도 야근을 당연시하는 현실. 아름다운 이론과 실제 삶 사이의 간극을 마주할 때,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거리에서 찾은 진짜 철학

디오게네스의 도발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플라톤이 아카데미아 라는 학교를 세워 제자들을 가르치는 동안, 디오게네스는 거리에서 살았다. 항아리를 집 삼아 최소한의 소유물만 가지고 살아가면서도, 누구보다 자유로운 삶을 살았다.

어느 날 디오게네스가 손으로 물을 떠 마시는 아이를 보고는 자신이 가진 마지막 그릇마저 버렸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아이가 나보다 더 간소하게 살고 있구나!"

 

그는 소유를 줄일수록 자유가 늘어난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이야기가 주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진정한 자유는 더 많이 가지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들로부터 벗어나는 데서 온다는 것이다. 스마트폰 하나에도 수십 개의 앱이 깔려 있고, 옷장에는 입지 않는 옷들이 가득하며, 머릿속에는 타인의 시선에 대한 걱정이 끊이지 않는 우리의 현실과 디오게네스의 삶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조롱 뒤에 숨은 진짜 메시지

플라톤을 향한 디오게네스의 조롱은 단순한 비난이 아니었다. 그것은 철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었다. "철학은 삶에 도움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현실과 동떨어진 이론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 질문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는 수많은 자기계발서를 읽고, 온라인 강의를 듣고, 세미나에 참석하면서 '성공하는 법', '행복해지는 법'을 배운다. 하지만 정작 일상에서는 여전히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타인과 비교하며, 불안해한다. 지식과 실천 사이의 간극, 이론과 현실 사이의 괴리가 바로 디오게네스가 지적한 문제의 핵심이다.

 

 

개처럼 사는 용기

디오게네스가 '개'라고 불린 이유는 그의 생활 방식 때문이었다. 체면을 차리지 않고, 사회적 예의에 얽매이지 않으며, 자연스러운 욕구에 솔직했다. 사람들은 이를 비웃었지만, 디오게네스는 오히려 자랑스러워했다. "개는 충실하고, 친구를 구별하며, 자신을 방어할 줄 안다. 그들에게서 배울 점이 많다"고 말했다.

 

현대 사회에서 '개처럼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것은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사는 것이다. 남들이 명품 가방을 들고 다닐 때 굳이 따라 하지 않는 것, 회사에서 눈치 보며 야근하는 대신 정시에 퇴근하는 용기를 갖는 것, SNS에서 화려한 일상을 연출하는 대신 소박하지만 진솔한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플라톤과 디오게네스, 그리고 우리

흥미롭게도 플라톤은 디오게네스의 도발에 화내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미친 소크라테스"라고 부르며 어느 정도 인정했다. 이는 진정한 철학자의 자세를 보여준다. 자신과 다른 관점을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배울 점을 찾으려는 열린 마음 말이다.

 

우리에게도 이런 태도가 필요하다. 누군가 우리의 생각이나 생활 방식에 의문을 제기할 때, 방어적으로 반응하기보다는 그 안에 담긴 메시지를 들어보려는 자세. 디오게네스가 털 뽑힌 닭을 들고 나타났을 때처럼, 때로는 우리의 고정관념을 흔드는 충격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결국 디오게네스가 플라톤에게 던진 메시지의 핵심은 이것이었다. "철학은 책상 위의 학문이 아니라 삶 속의 실천이어야 한다. 진정한 지혜는 복잡한 이론이 아니라 단순하고 솔직한 삶에서 나온다."

 

오늘도 우리는 수많은 '털 뽑힌 닭'들 앞에서 선택해야 한다. 기존의 정의와 관념에 안주할 것인가, 아니면 디오게네스처럼 용감하게 질문을 던질 것인가. 그 선택이 바로 우리 삶의 자유로움을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