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강아지별의 문을 열다

무지개다리는 생각보다 길었다.
하린은 구름 사이를 걸으며 아래를 내려다봤다. 지구가 점점 작아져 가고 있었다. 어느새 발밑의 무지개빛 다리는 더욱 선명해졌고, 저 멀리 희미하게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와..."
하린의 입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저 앞에 펼쳐진 것은 그야말로 기적 같은 광경이었다. 하늘에 떠 있는 하나의 작은 행성. 그 행성은 따뜻한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었고, 곳곳에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집들 사이로는 꽃길이 이어져 있고, 넓은 초원에서는 뭔가가 뛰어다니고 있었다.
"탄이가 말한 강아지별이 저기구나..."
무지개다리의 끝에 다다를수록 그 모습이 더욱 선명해졌다. 그리고 하린은 깨달았다. 초원에서 뛰어다니는 것들이 바로 강아지들이라는 것을.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그 강아지들은... 두 발로 걷고 있었다.
"어? 저건..."
하린이 눈을 비비며 다시 보려는 순간, 무지개다리가 끝났다. 발밑에 푹신한 풀밭이 느껴졌다. 하린은 강아지별에 도착한 것이다.
"하린아! 여기야!"
익숙한 목소리에 하린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탄이... 야?"
그곳에 서 있는 것은 분명 탄이였다. 하지만 탄이는... 사람이었다. 정확히는 사람의 모습을 한 탄이였다. 갈색 머리에 따뜻한 갈색 눈동자, 그리고 여전히 장난기 가득한 미소. 하지만 키는 하린과 비슷했고, 두 팔과 두 다리로 서 있었다.
"놀랐지? 나도 처음엔 정말 놀랐어."
탄이가 웃으며 하린에게 다가왔다. 그 걸음걸이마저 예전의 탄이 그대로였다. 살짝 통통 튀는 듯한, 항상 기쁨이 넘치는 그런 걸음.
"이게... 어떻게..."
"강아지별에서는 우리가 꿈꿔왔던 모습이 될 수 있어. 나는 항상 하린이처럼 되고 싶었거든. 하린이랑 손잡고 걷고, 하린이랑 나란히 앉아서 얘기하고 싶었어."
탄이가 하린의 손을 잡았다. 따뜻했다. 정말로 따뜻했다.
"정말... 정말 탄이야?"
"응, 정말 탄이야. 내가 좋아하던 치킨 냄새, 기억하지? 하린이가 치킨 먹을 때마다 나한테도 한 조각씩 주던 거. 그리고 내가 제일 좋아하던 노란 공. 하린이가 던져주면 물어오던 그 공 말이야."
하린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맞다. 정말 탄이였다.
"보고 싶었어, 탄아. 정말 보고 싶었어."
"나도야, 하린아. 매일 보고 싶었어."
두 사람이 감격적인 재회를 나누고 있는 사이, 주변에서 웅성웅성 소리가 들렸다. 하린이 고개를 들어보니, 멀지 않은 곳에서 여러 강아지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 역시 모두 사람의 모습이었다.
"어머, 탄이가 말하던 그 사람이구나!"
한 강아지가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긴 흰 털을 가진 것으로 보아 스피츠 종류인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저는 뽀미예요. 탄이한테 하린이 얘기 정말 많이 들었어요."
"저는 초코예요. 반가워요, 하린씨."
갈색 털의 강아지가 정중하게 인사했다.
"나는 맥스! 탄이 친구야!"
큰 덩치의 강아지가 씩씩하게 말했다.
하린은 어리둥절했다. 이 모든 상황이 꿈만 같았다.
"여기... 정말 강아지별이야?"
"그럼! 우리가 사는 곳이야." 탄이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와, 구경시켜줄게!"
탄이가 하린의 손을 잡고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길가에는 작고 예쁜 집들이 늘어서 있었다. 각 집마다 정원이 있었고, 그 정원에서는 강아지들이 꽃을 키우거나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여기는 우리가 꿈꿔왔던 삶을 살 수 있는 곳이야. 하린이랑 함께했던 기억들을 간직하면서도, 우리만의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거지."
"모든 강아지가 다 이렇게 사람 모습인거야?"
"응! 여기 온 지 얼마 안 되면 자연스럽게 변해. 우리가 마음속으로 바라던 모습으로 말이야. 어떤 애들은 주인과 비슷한 모습이 되기도 하고, 어떤 애들은 자기만의 특별한 모습이 되기도 해."
길을 걷다 보니 작은 카페가 나타났다. 간판에는 '무지개 카페'라고 적혀 있었다.
"저기서 차 한 잔 할까? 너 목 마르겠다."
"강아지들이 카페도 운영해?"
"물론이지! 여기서는 뭐든 할 수 있어. 루시는 원래 빵 냄새를 정말 좋아했거든. 그래서 지금은 베이커리 카페를 운영해."
카페 안으로 들어가니 달콤한 빵 냄새가 가득했다. 한 구석에서는 몇몇 강아지들이 옹기종기 모여 수다를 떨고 있었다.
"어머, 탄이! 친구 데려왔네?"
카운터에서 일하던 강아지가 반갑게 인사했다.
"응, 루시야. 하린이야. 내가 늘 얘기하던."
"아아! 그 유명한 하린이! 반가워요. 저는 루시예요. 탄이가 하린이 얘기만 하면 한 시간은 기본이에요."
루시가 깔깔 웃으며 음료를 내와줬다. 하린은 따뜻한 차를 마시며 주변을 둘러봤다. 이 모든 것이 현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신비로웠다. 하지만 탄이의 따뜻한 손, 달콤한 빵 냄새, 강아지들의 웃음소리... 모든 것이 생생했다.
"탄아, 여기서는 정말 행복해?"
"응! 정말 행복해. 하지만..."
탄이의 표정이 잠깐 어두워졌다.
"하지만?"
"하린아, 사실 내가 하린이를 여기로 부른 이유가 있어. 우리에게는 특별한 임무가 있거든."
"임무?"
탄이가 진지한 표정으로 하린을 바라봤다.
"여기 있는 많은 친구들이 아직도 지구에 있는 주인들을 걱정하고 있어. 그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방법이 없어서 고민이야. 하린이가 그 메신저가 되어줬으면 해."
하린은 탄이의 말을 들으며 마음이 무거워짐을 느꼈다. 이것이 바로 탄이의 편지에 적혀 있던 '조건'이었구나.
"나는... 할 수 있을까?"
"할 수 있어. 분명히 할 수 있어." 탄이가 하린의 손을 꼭 잡았다. "하린이니까 가능한 일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