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개의 세계를 잃어버린 CEO
네 개의 세계를 잃어버린 CEO: 실존주의 상담의 양식세계 이야기

1960년대 런던
1961년 런던, 정신분석학자 로널드 레인(R.D. Laing)은 한 환자와의 상담에서 이상한 현상을 발견했다. 조현병 진단을 받은 20대 여성이 자신을 "세계에서 분리된 존재"라고 표현했던 것이다. 레인은 호기심이 생겼다. '세계에서 분리'라는 게 정확히 무엇을 의미할까?
그로부터 10년 후,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들과 교류하던 레인은 놀라운 통찰에 도달했다. 인간은 사실 네 개의 서로 다른 세계에 동시에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정신적 고통은 이 네 세계 중 하나 이상이 단절되었을 때 발생한다는 것을.
고유세계의 균열
2024년 서울, 글로벌 IT기업 CEO인 성민이 상담실 문을 두드렸다.
"선생님, 제가 누구인지 모르겠어요. 회사에서는 성공한 CEO, 집에서는 좋은 아버지, 골프장에서는 재미있는 친구... 그런데 정작 저는 어디에 있는 걸까요?"
이것이 바로 '고유세계(Eigenwelt)'의 상실이었다. 하이데거가 1927년 『존재와 시간』에서 처음 제시한 개념으로, 자기 자신과 맺는 가장 사적이고 내밀한 관계의 세계를 말한다.
성민의 경우는 전형적인 고유세계의 상실이었다. 20년 전 스타트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그는 자신이 누구이고 무엇을 원하는지 명확했다. 하지만 성공하면서 점점 다른 사람들의 기대에 맞춰 살기 시작했다. 어느 날 부터는 거울 속에 낯선 사람이 보였다.
상담 3회차, 그에게 간단한 질문을 던졌다.
"혼자 있을 때 가장 편안한 순간은 언제인가요?"
그는 한참 생각하더니 말했다.
"새벽 4시에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바라볼 때요. 그때만큼은... 그냥 김성민일 수 있어요."
영적세계의 공허함
성민의 고백은 계속되었다. "사실 저는 어릴 때부터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어요. 하지만 언젠가부터 교회에 가는 게 무의미하게 느껴졌어요. 마치 빈 껍데기 같은 기분이에요."
이것이 '영적세계(Spirituelle Welt)'와의 단절이었다. 칼 융(Carl Jung)이 1930년대에 강조했던 개념으로, 인간에게는 물질적 성공을 넘어선 초월적 가치와 연결되고자 하는 근본적 욕구가 있다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융 자신도 40대 중반에 비슷한 경험을 했다. 1913년, 당시 스위스 정신의학계의 거물이었던 그는 갑작스럽게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순간 그는 후에 "정신적 실험"이라 지칭한 자신의 내면 세계로의 탐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이 바로『붉은 책』이다.
성민에게 제안했다. "지금까지 성공이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왔다면, 이제 의미라는 나침반이 필요할 때가 아닐까 싶어요" 그는 며칠 후 오랫동안 미뤄뒀던 봉사활동을 시작했다고 했다.
공존세계의 파편화
"가장 힘든 건 외로움이에요." 성민의 세 번째 고백이었다. "수백 명의 직원이 있고, 가족도 있지만... 정말 가까운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 모두가 CEO란 직함의 저에게만 관심이 있지, 그냥 김성민에게는 관심이 없어요."
이것이 '공존세계(Mitwelt)'의 문제였다. 마르틴 부버가 1923년 『나와 너』에서 구분한 'I-It' 관계와 'I-Thou' 관계의 차이였다. 성민은 모든 관계를 도구적 관계(I-It)로만 경험하고 있었던 것이다.
부버는 실제로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 1차 대전 중 군목으로 활동하던 그는 수많은 병사들과 만났지만, 진정한 만남은 거의 없었다고 회고했다. 그 경험이 바로 'I-Thou' 관계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준 계기였다.
상담실에서 성민에게 물었다. "최근에 누군가와 정말 솔직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나요?" 그는 고개를 저었다. "항상 드라마속 배우가 되어 연기만 하고 있는 것 같아요."
6개월 후, 그는 오랜 친구와 진솔한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고 했다. "처음에는 CEO 가면을 벗는 게 무서웠어요. 하지만 그때 친구가 말하더군요. '이제야 네가 보인다'고."
주변세계와의 단절
마지막 세계는 의외의 곳에서 드러났다. "요즘 잠을 못 자요. 몸이 말을 안 들어요." 성민의 몸은 이미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주변세계(Umwelt)'는 야콥 폰 위엑스퀼(Jakob von Uexküll)이 1909년에 처음 제시한 개념으로, 생물이 인식하고 작용하는 지각세계를 의미한다. 실존주의에서는 이를 확장해 인간이 자연환경, 몸, 물리적 현실과 맺는 관계로 본다.
성민은 지난 5년간 운동을 거의 하지 않았고, 자연과 접촉할 시간도 없었다. 하루 16시간을 사무실에서 보내며 인공조명 아래서만 살았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가 1845년 월든 호숫가로 간 이유도 이와 관련이 있다. 그는 2년간의 숲 속 생활을 통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조용한 절망의 삶을 살고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자연과의 연결이 끊어지면 인간은 자신의 본질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상담이 어느정도 마무리되어 갈 때 쯤, 성민에게 제안했다. "일주일에 한 번, 산책을 해보시는 게 어떨까요?" 처음에는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던 그는, 한 달 후 완전히 달라진 표정으로 왔다. "선생님, 들꽃들이 이렇게 예쁜 줄 몰랐어요."
네 개의 세계로 돌아가기
1년 후, 성민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여전히 성공한 CEO였지만, 이제는 네 개의 세계에서 균형 잡힌 삶을 살고 있었다.
로널드 레인이 1960년대에 발견한 통찰은 여전히 유효하다. 인간은 네 개의 세계를 오가며 살아가는 존재이고, 어느 하나라도 소홀히 하면 균형이 깨진다는 것이다. 성민이 마지막 상담에서 한 말이 인상적이었다. "이제야 알겠어요. 성공한 CEO가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온전한 인간이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걸요."
오늘도 어디선가 네 개의 세계 중 하나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상담실을 찾고 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기술이 아니라, 잃어버린 세계로 돌아가는 용기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