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여름날의 몽실 – 끝나지 않은 여행

"첫 번째로 만날 친구는 몽실이야."
탄이가 하린의 손을 잡고 마을 한쪽으로 향했다. 아침 햇살이 강아지별을 따뜻하게 비추고 있었고, 공기 중에는 바다 냄새가 은은하게 풍겼다.
"바다 냄새가 나는데?"
"응, 몽실이가 있는 곳이라서 그래. 몽실이는... 조금 특별한 공간에서 살고 있어."
길 끝에 다다르자, 하린은 눈을 의심했다. 그곳에는 작은 바다가 있었다. 에메랄드빛 바다와 하얀 모래사장, 그리고 야자수들이 늘어선 완벽한 해변이었다.
"여기가 제주도야?"
"몽실이만의 제주도지. 몽실이가 가장 행복했던 기억을 재현한 공간이야."
모래사장에서는 흰색 말티즈가 혼자 모래성을 쌓고 있었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모래성을 쌓다가도 자꾸만 바다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고 있었다.
"몽실아!"
탄이가 부르자 몽실이 고개를 돌렸다. 귀여운 얼굴이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슬픈 표정이었다.
"탄이야! 그리고..." 몽실이 하린을 바라봤다. "혹시 하린씨인가요?"
"안녕, 몽실아. 탄이한테 얘기 들었어."
"와, 정말 오셨네요! 저 정말 하린씨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몽실이 일어나서 하린에게 다가왔다. 하지만 그 걸음이 어딘지 무거워 보였다.
"몽실아, 모래성 예쁘게 잘 만들었네."
"감사해요. 하지만... 혼자 만드니까 재미가 없어요. 예전에는 지후오빠랑 함께 만들었는데..."
몽실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지후오빠가 몽실이 주인이야?"
"네, 저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에요. 지후오빠는 대학생인데, 방학 때마다 저랑 여행을 갔어요. 특히 제주도를 정말 좋아했어요."
몽실이 바다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작년 여름이었어요. 지후오빠가 취업 준비로 너무 힘들어해서, 제가 오빠를 위로해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오빠가 제일 좋아하는 제주도로 여행을 가자고 조르고 조른 거죠."
"그래서 제주도에 갔구나."
"네! 정말 행복했어요. 오빠랑 해변을 뛰어다니고, 맛있는 거 먹고, 밤에는 별도 봤어요. 오빠가 그렇게 웃는 모습 오랜만에 봤거든요."
몽실의 얼굴에 잠깐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가 다시 어두워졌다.
"그런데... 마지막 날에 사고가 났어요. 오빠랑 드라이브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몽실이 말을 잇지 못했다. 하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사고에서 몽실이가...?"
"네. 저는... 저는 그 자리에서 바로 여기로 왔어요. 하지만 지후오빠는..."
몽실이 울음을 터뜨렸다.
"지후오빠는 다쳤어요! 많이 다쳤는데, 병원에서 깨어나자마자 저를 찾았대요. 저를 계속 찾고 있어요."
탄이가 몽실의 어깨를 토닥여줬다.
"몽실아, 천천히 얘기해도 돼."
"하린씨... 지후오빠가 저 때문에 너무 아파하고 있어요. 자기가 저를 죽게 했다고, 자기 때문이라고 계속 자책하고 있어요. 그래서 저... 저는 떠날 수가 없어요."
하린의 가슴이 먹먹해졌다.
"지후오빠가 몽실이를 많이 사랑하나 보네."
"네! 정말 많이 사랑해주었어요. 제가 아기일 때부터 키워주셨거든요. 오빠 말로는 제가 오빠의 유일한 가족이었대요."
몽실이 모래를 한 움큼 쥐었다가 바람에 날려 보냈다.
"그런데 여기서는 오빠가 얼마나 아파하는지 다 느껴져요. 오빠가 울 때마다 제 마음도 아파요. 오빠가 제 이름을 부를 때마다... 대답해주고 싶은데 그렇게 할 수가 없어요."
"몽실아, 그래서 지후오빠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는 거구나"
"네! 정말 많이 있어요."
몽실이 하린을 간절한 눈으로 바라봤다.
"하린씨, 지후오빠에게 전해주실 수 있나요?"
"물론이야. 뭐든 이야기해봐."
몽실이 깊은 숨을 쉬고 말을 시작했다.
"지후오빠, 오빠 잘못이 아니에요. 정말 오빠 잘못이 아니라고요. 그날 비가 온 건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던 일이에요. 그리고... 저는 정말 행복했어요. 오빠랑 함께한 그 여행이 제 생애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몽실의 목소리에 눈물이 섞였다.
"오빠가 자책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 대신 오빠가 아파하는 게 제일 속상해요. 그리고... 오빠, 저 여기서 정말 잘 살고 있어요. 매일 제주도 바다에서 뛰어놀고, 오빠랑 함께 만들었던 모래성도 만들고 있어요."
몽실이 하린의 손을 잡았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오빠가 다시 웃었으면 좋겠어요. 오빠의 웃는 얼굴이 저는 세상에서 제일 좋거든요. 저 때문에 오빠가 슬퍼하면, 저도 여기서 계속 슬플 것 같아요."
"또 다른 말은 없어?"
"음... 아! 그리고 오빠에게 말해주세요. 저희가 함께 계획했던 다음 여행들, 오빠 혼자라도 다 가보라고요. 부산도, 경주도, 강릉도... 저는 오빠 마음속에서 함께 갈 거예요."
몽실이 잠시 망설이더니 덧붙였다.
"그리고... 만약 오빠가 준비되면, 새로운 친구도 만나보라고 해주세요. 저는 질투하지 않을 거예요. 오빠가 행복하면 저도 행복하거든요."
하린은 몽실의 말을 듣고 있자니 가슴이 뭉클해졌다. 이 작은 강아지가 얼마나 주인을 사랑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몽실아, 정말 대단한 아이구나. 지후오빠가 너를 얼마나 자랑스러워할지 몰라."
"정말요? 하린씨가 전해주시면... 오빠가 조금이라도 마음이 편해질까요?"
"분명히 그럴 거야. 몽실이의 마음이 오빠에게 잘 전해질 거야."
몽실이 처음으로 환하게 웃었다.
"감사해요, 하린씨! 정말 감사해요!"
그때 탄이가 몽실에게 물었다.
"몽실아, 그럼 이제 마음이 조금 편해졌어?"
"네, 많이 편해졌어요. 하린씨가 오빠에게 제 마음을 전해주신다면, 저도 이제 다음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몽실이 바다를 바라보며 말했다.
"오빠, 저 정말 많이 사랑해요. 그리고... 언젠가 오빠도 여기 오게 되면, 그때는 정말 영원히 함께 여행해요."
바다 위로 노을이 지고 있었다. 몽실의 제주도는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이제는 조금은 더 평화로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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