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편지, 탄이 그리고 무지개다리

비가 내리는 날이면 유독 그리웠다.
하린은 창가에 턱을 괴고, 빗방울이 유리창을 타고 흘러내리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세 달 전까지만 해도 이 자리엔 항상 탄이가 있었다. 작은 코를 창문에 대고 후후 하며 숨을 내쉬던, 그래서 유리창이 하얗게 서리곤 했던 그 아이가.
"탄아..."
이름을 부르는 것조차 이제는 아팠다.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핸드폰 화면에는 읽지 않은 카카오톡 메시지들이 쌓여 있었다. 친구들의 안부 인사, 회사 동료들의 걱정 섞인 말들. 하지만 하린에게는 그 모든 것이 멀게만 느껴졌다.
'살아있긴 한 걸까, 나?'
탄이가 떠난 후 하린의 일상은 멈춰버렸다. 아침에 일어나면 습관적으로 사료통을 찾다가, 텅 빈 공간을 마주하며 현실을 깨닫곤 했다. 퇴근길에는 무의식중에 애견용품점 앞에서 발길을 멈추다가, 괜히 혼자 서 있는 자신이 우스꽝스러워 씁쓸한 웃음을 짓곤 했다.
"언니, 언제까지 이럴 거야?"
동생 하연이 걱정스런 목소리로 물었다. 하연은 일주일에 한 번씩 찾아와 하린의 안부를 확인하곤 했다.
"이게 뭐가 이상해? 나 잘 살고 있는데."
"잘 산다는 게 3일 동안 같은 옷 입고, 컵라면만 먹는 게야? 탄이가 이런 언니 모습 보면 얼마나 속상하겠어."
하연의 말에 하린은 움찔했다. 하지만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다. 탄이 이야기만 나오면 목구멍이 막혀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날 저녁, 하연이 돌아간 후 하린은 탄이의 물건들이 담긴 상자를 꺼냈다. 사료 그릇, 목줄, 좋아하던 인형, 그리고... 하린은 상자 밑바닥에서 낡은 편지봉투 하나를 발견했다.
'이건 뭐지?'
편지봉투는 누렇게 바랬지만, 하린의 이름이 탄이의 발바닥 도장과 함께 적혀 있었다. 하린은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펼쳤다.
"하린아, 안녕?
나는 지금 무지개다리 너머, 강아지별에서 이 편지를 쓰고 있어. 많이 놀랐지? 강아지가 편지를 쓸 수 있다니 말이야. 하지만 여기서는 모든 게 가능해. 우리가 한때 꿈꿨던 모든 것들이 말이야.
하린아, 너무 슬퍼하지 마. 나는 여기서 정말 행복해. 매일 넓은 들판을 뛰어다니고, 맛있는 간식도 마음껏 먹을 수 있어. 그리고 무엇보다... 너를 다시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어.
강아지별에는 특별한 규칙이 하나 있어. 정말 간절히 보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이곳으로 초대할 수 있다는 거야. 하지만 조건이 있어. 그 사람이 우리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해줘야 한다는 것.
하린아, 나와 함께 올래? 강아지별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무지개다리를 건너오면 돼. 하지만 기억해, 이건 영원한 여행이 아니야. 너는 결국 돌아가야 해. 우리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서.
사랑해, 하린아. 항상 그랬듯이.
- 탄이가 -
하린은 편지를 읽고 또 읽었다. 눈물이 뚝뚝 떨어져 글자가 번졌지만, 그것은 분명 탄이의 목소리였다.
"말도 안 돼... 이런 일이 있을 리가 없어..."
하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간절했다. 탄이를 다시 볼 수 있다면, 설령 그것이 꿈이라 할지라도 상관없었다. 그때였다. 창밖에 이상한 빛이 번쩍였다. 하린이 고개를 들자, 하늘에 무지개가 떠 있었다. 그런데 그 무지개는 평범한 무지개가 아니었다. 마치 다리처럼 아래로 늘어져 있고, 그 끝은 하린의 방 창문까지 닿아 있었다.
하린은 숨을 멈췄다. 편지 속에서 탄이가 말했던 바로 그것이었다.
"무지개다리..."
그 순간,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린아, 왔구나! 빨리 와, 늦으면 다리가 사라져버려!"
탄이의 목소리였다. 분명히 탄이의 목소리였다. 하린은 창문을 열고 무지개다리를 바라봤다. 다리는 은은한 빛을 내며, 마치 하린을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정말... 갈 수 있는 거야?"
하린은 한 발짝, 그리고 또 한 발짝 무지개다리 위로 내디뎠다. 놀랍게도 다리는 단단했다. 발밑으로 구름들이 흘러가고, 멀리서 탄이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하린아! 이쪽이야!"
하린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탄이가 있는 곳, 강아지별을 향해 무지개다리를 따라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오랜만에 희망이라는 작은 불빛이 켜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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