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릿츠의 일곱 가지 발견: 진로상담실에서 만난 일곱 개의 초상
1961년 아이오와, 천 개의 얼굴을 가진 진로 고민
1961년 가을, 아이오와 대학교 상담센터. 48세의 존 크릿츠(John O. Crites) 교수는 지난 15년간 작성한 상담기록 카드 천 장을 책상에 펼쳐놓고 있었다.
"왜 어떤 사람은 진로를 쉽게 결정하고, 어떤 사람은 평생 방황할까?"
그는 윌리엄슨과 보딘의 연구를 공부했다. 하지만 뭔가 부족했다. 진로 문제는 더 복잡하고, 더 다양했다. 천 장의 카드를 분류하고, 재분류하고, 또 분류하면서 크릿츠는 패턴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진로 문제는 단순히 네 가지나 다섯 가지가 아니야. 세 가지 차원이 있어. 적응성, 결정성, 현실성... 그리고 이 차원들이 만나서 일곱 가지 유형을 만들어내는구나!"
적응형 - "나는 내 자리를 찾았다"
1956년 아이오와, 행운아의 방문
23세 대학원생 제임스가 크릿츠의 상담실에 왔다. 하지만 그는 문제가 있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밝고 자신감이 넘쳤다.
"크릿츠 교수님, 저는 사실 문제가 없어요. 그냥 확인차 왔어요."
"무엇을 확인하고 싶으신가요?"
"저는 수학을 정말 좋아해요. 그리고 수학을 잘해요. 통계학 박사과정에 진학하려는데... 이게 맞는 선택인지 확인하고 싶어서요."
크릿츠는 제임스의 생활기록을 살펴봤다. 수학 성적 A+, 수학 동아리 회장, 통계학 경시대회 1등...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눈빛이 수학 이야기를 할 때 반짝였다.
"제임스, 자네는 적응형(Adjusted Type)이군. 흥미와 적성이 완벽하게 일치하는 드문 경우지"
제임스는 웃었다.
"저는 운이 좋은 거죠?"
"운이라기보다는... 자신을 잘 아는 거지. 그리고 그것을 인정할 용기가 있는 거고."
적응형은 흥미와 적성이 일치하여 진로 갈등 없이 자연스럽게 길을 찾아가는 유형이다. 전체 인구의 약 15%가 적응형이라고 한다.
부적응형 - "나는 아무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텅 빈 영혼
20세 학생 리처드가 상담실에 왔다. 그는 2학년인데도 전공을 정하지 못했다.
"리처드, 어떤 분야에 관심이 있나요?"
"없어요."
"그럼 어떤 분야를 잘하나요?"
"모르겠어요. 딱히 잘하는 것도 없는 것 같아요."
크릿츠는 리처드에게 흥미검사와 적성검사를 실시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흥미검사는 모든 항목에서 평균 이하. 적성검사도 특별히 두드러진 영역이 없었다.
"리처드, 어린 시절은 어땠나요?"
"부모님이 맞벌이셔서... 저는 항상 혼자였어요. TV 보고, 게임하고... 뭔가를 열심히 해본 적이 없어요. 그냥... 살아왔어요."
크릿츠는 깨달았다. 리처드는 관심과 재능을 개발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의 내면에는 흥미도, 적성도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던 것이다.
"리처드, 자네는 부적응형(Multipotential Type - Unadjusted)인 것 같네. 흥미와 적성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한 경우지. 하지만 이건 고칠 수 있어, 걱정말게."
크릿츠는 리처드에게 6개월간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도록 했다. 봉사활동, 동아리, 인턴십... 처음으로 세상과 접촉하기 시작했다.
6개월 후, 리처드는 변화했다.
"교수님, 저는 사회복지에 흥미가 생겼어요. 봉사활동 하면서 사람들을 도울 때 처음으로 의미를 느꼈어요."
적응성의 하나의 특징인 부적응형은 흥미나 적성이 발달하지 않아 어떤 분야도 선택하지 못하는 유형이다. 초기 개입과 다양한 경험이 필요하다.
다재다능형 - "모든 게 좋은데, 그게 문제야"
재능의 저주
22세 여학생 캐서린이 찾아왔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교수님, 저는 너무 힘들어요."
"무엇이 힘들지?"
"저는... 모든 걸 잘해요. 그리고 모든 게 재미있어요. 수학도 좋고, 음악도 좋고, 문학도 좋고, 과학도 좋아요. 근데 뭘 선택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크릿츠는 캐서린의 성적표를 봤다. 모든 과목 A. 흥미검사는 6개 영역에서 모두 상위 10%. 적성검사도 마찬가지였다.
"캐서린, 사람들은 자네을 부러워할 거네."
캐서린은 더 큰 소리로 울었다.
"부러워요? 매일 밤 악몽을 꿔요! 한 길을 선택하면 다른 다섯 길을 포기해야 하잖아요. 저는 작곡도 하고 싶고, 의사도 되고 싶고, 소설도 쓰고 싶어요. 하지만 하나만 선택해야 하잖아요!"
크릿츠는 고개를 끄덕였다.
"캐서린, 자네는 다재다능형(Multipotential Type - Decided)이라네. 너무 많은 재능과 흥미 때문에 오히려 선택에 하지 못하고 있는 거지"
크릿츠는 캐서린에게 물었다. "모든 선택이 동등하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나? 아니면 그중에서도 조금 더 중요한 게 있나?"
캐서린은 한참을 생각했다.
"음악이요... 음악을 할 때가 가장 행복해요."
"그럼 음악을 주업으로 하고, 다른 것들은 취미로 하면 어떨까? 자네는 평생 여러 가지를 할 수 있어. 다만 지금은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 뿐이지."
적응성의 다른 특성인 다재다능형은 여러 분야에서 흥미와 적성을 모두 갖추어 선택의 어려움을 겪는 유형이다. 우선순위 설정이 핵심이다.
우유부단형 - "결정이라는 단어가 무섭다"
1959년 아이오와, 결정 공포증
25세 대학원생 데니스가 상담을 받았다. 그는 이미 세 번이나 전공을 바꿨다.
"데니스, 왜 계속 전공을 바꾸는가?"
"음... 경제학이 좋을 것 같았는데, 막상 해보니 아닌 것 같아서요. 그래서 심리학으로 바꿨는데, 그것도 아닌 것 같고... 지금은 역사학인데, 이것도 확신이 안 서요."
크릿츠가 검사를 해보니 흥미롭게도 데니스는 세 분야 모두 적성이 괜찮았고, 흥미도 있었다.
"데니스, 세 분야 모두 자네에게 맞는데, 왜 계속 전공을 바꾸는지 생각해본 적 있나?"
데니스는 한참 침묵하다가 말했다.
"사실... 저는 결정하는 게 무서워요. 뭔가를 결정하면 그게 영원히 제 인생이 될 것 같아서요. 만약 잘못된 선택이면 어떡하죠?"
크릿츠는 더 깊이 탐색했다. 데니스는 어린 시절부터 결정에 어려움을 겪었다. 식당에서 메뉴 고르기, 옷 사기, 심지어 영화 선택까지도 30분씩 고민했다.
"데니스, 자네는 우유부단형(Indecisive Type)이라고 할 수 있네. 흥미와 적성과는 무관하게, 성격적으로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거지."
결정성의 한가지 유형인 우유부단형은 흥미와 적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격적 특성으로 인해 결정을 회피하는 유형이다. 심리치료가 필요하다.
다섯 번째 초상: 비현실형 - "나는 발레리나가 될 거야"
1960년 아이오와, 깨진 꿈
19세 여학생 에밀리가 상담실에 왔다. 그녀는 발레리나가 되고 싶어 했다.
"에밀리, 발레를 얼마나 했나?"
"3년이요. 고등학교 때 시작했어요."
크릿츠는 놀랐다. 전문 발레리나는 보통 5-6세에 시작한다. 16세는 너무 늦었다.
"발레 선생님은 뭐라고 하지?"
에밀리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제게... 재능이 없대요. 하지만 저는 발레가 너무 좋아요! 매일 연습하면 안 될까요?"
크릿츠가 에밀리의 적성검사를 보니, 그녀는 운동신경이 평균 이하였다. 신체적 조건도 발레리나에게 적합하지 않았다.
"에밀리, 자네는 발레를 사랑하지만, 전문 발레리나가 되기엔 적성이 맞지 않는 것 같네. 자네는 검사결과 비현실형(Unrealistic Type)이라네"
에밀리는 울었다.
"그럼 저는 어떡하죠? 발레가 제 전부인데..."
크릿츠는 부드럽게 말했다.
"발레를 직업으로 할 수는 없어도, 발레와 관련된 다른 길이 있다네. 발레 교육자, 안무가의 조수, 발레 의상 디자이너... 자네의 사랑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지."
결정성의 다른 한가지 유형인 비현실형: 강한 흥미는 있으나 적성이 부족하여 목표 달성이 어려운 유형이다. 현실적 대안 제시가 필요하다.
불충족형 - "나는 더 잘할 수 있는데"
낭비되는 재능
24세 남학생 마이클이 상담을 받았다. 그는 공장 기술자 교육과정에 등록했다.
"마이클, 왜 기술자 과정을 선택했나?"
"음... 빨리 취업하고 싶어서요. 그리고 기계 만지는 것도 좋아하고요."
크릿츠가 마이클의 적성검사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는 수학과 과학에서 상위 5%의 능력을 보였다. 엔지니어, 과학자가 될 수 있는 재능이었다.
"마이클, 수학과 과학을 좋아하는 데 왜 기술자 과정을 선택했나? 공학 박사도 할 수 있는 능력인데."
마이클은 어색하게 웃었다.
"박사요? 그건... 저 같은 사람이 하는 거 아니에요. 저는 그냥 평범하게 살고 싶어요."
크릿츠가 더 탐색해보니, 마이클은 가난한 집안 출신이었다.
"우리 집안에서 대학 간 사람이 없어요. 저는 그냥 안정적으로 돈 벌면 돼요."
"마이클, 자네는 불충족형(Unfulfilled Type)인 듯 하네. 자네는 자신의 적성보다 훨씬 낮은 수준의 직업을 선택하고 있네. 당신의 재능이 낭비되고 있다는 말이지."
크릿츠는 마이클에게 장학금 정보를 제공하고, 공학과 교수들을 소개했다. 2년 후, 마이클은 공학 석사과정에 있었다.
현실성의 한가지 유형인 불충족형은 적성보다 낮은 수준의 직업을 선택하여 재능이 낭비되는 유형이다. 자신감과 정보 제공이 필요하다.
강압형 - "나는 이 일이 싫지만 어쩔 수 없다"
갇힌 영혼
28세 의대생 로버트가 상담실에 왔다. 그는 우울증 약을 먹고 있었다.
"로버트, 의대 생활은 어떤가?"
"지옥이에요. 매일 아침 일어나기가 싫어요."
"그럼 왜 의대를 다니지?"
"고등학교때 성적이 좋았으니까요. 모두가 '성적이 좋으면 의대 가야지'라고 했어요. 그래서 왔어요."
크릿츠가 검사해보니, 로버트는 과학 쪽 적성이 뛰어났다. 의대에 합격한 것이 놀랍지 않았다. 하지만 흥미검사는 달랐다. 그는 예술, 문학, 음악에 높은 흥미를 보였다. 과학이나 의학에는 흥미가 거의 없었다.
"로버트,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뭐라고 생각하나?"
로버트는 한참 침묵하다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소설을 쓰고 싶어요. 하지만... 그게 가능할까요? 의대까지 왔는데, 이제 와서 작가가 되겠다고 하면..."
"자네는 강압형(Coerced Type) 스타일인것 같네. 적성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진로를 선택했지만, 전혀 흥미가 없는 일을 하고 있는 거지."
크릿츠는 로버트에게 물었다.
"50년 후, 당신의 묘비에 뭐라고 쓰여 있으면 좋겠나? '성적이 좋았던 의사'인가, 아니면 '자신의 꿈을 산 작가'인가?"
6개월 후, 로버트는 의대를 그만두고 문예창작 석사과정에 입학했다. 10년 후, 그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강압형은 적성은 있으나 흥미가 전혀 없는 분야를 선택하여 극심한 불만족을 경험하는 유형이다. 용기 있는 재선택이 필요하다.
1965년, 크릿츠
1965년, 크릿츠는 획기적인 저서 『진로성숙의 측정』을 출간하며 이렇게 썼다. "15년간 천 명을 내담자를 상담하며 나는 발견했다. 진로 문제는 일곱 가지 초상으로 나뉜다.
적응성 차원:
- 적응형: 흥미와 적성의 조화 (15%)
- 부적응형: 흥미와 적성의 미발달 (10%)
결정성 차원:
- 다재다능형: 너무 많은 선택지의 혼란 (5%)
- 우유부단형: 결정 자체에 대한 공포 (20%)
현실성 차원:
- 비현실형: 흥미는 있으나 적성 부족 (25%)
- 불충족형: 적성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함 (15%)
- 강압형: 적성만으로 선택하여 불행 (10%)
이 일곱 가지 유형을 이해하면, 모든 진로 문제를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다. 진로상담은 과학이다." 그리고 크릿츠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진로 문제는 천 개의 얼굴을 가졌지만, 일곱 개의 뿌리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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