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두근거림이 없다면, 당신은 이미 죽은 것과 같습니다.
- 롤로 메이(Rollo May)

실존의 다섯 가지 그림자: 키르케고르에서 욜롬까지
1843년 코펜하겐, 30세의 쇠렌 키르케고르(Søren Kierkegaard)는 약혼자 레기네 올센을 떠나보내며 절망에 빠져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포기한 그는 자신의 일기에 이렇게 썼다.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이다." 그는 아직 몰랐다. 자신이 방금 실존주의 심리학의 씨앗을 뿌렸다는 것을.
첫 번째 그림자: 죽음의 각성
1927년,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존재와 시간』에서 충격적인 주장을 했다. "인간은 죽음을 향한 존재(Sein-zum-Tode)"라고. 그런데 이 무거운 철학적 명제가 20년 후 상담실에서 혁명을 일으킬 줄 누가 알았을까?
1960년대 캘리포니아, 심리학자 어빈 욜롬(Irvin Yalom)은 한 암 환자를 상담하면서 놀라운 발견을 했다. 죽음을 직면한 환자들이 오히려 삶을 더 생생하게 경험한다는 것이었다. 한 50대 여성 환자는 말했다. "암 진단을 받고 나서야 장미꽃 향기를 진짜로 맡을 수 있게 되었어요."
욜롬은 깨달았다. 죽음에 대한 인식이 삶에 대한 각성을 가져온다는 것을. 이것이 실존주의 상담에서 '죽음'이 중요한 이유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렌즈인 것이다.
두 번째 그림자: 자유의 무게
1946년 파리, 장-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는 유명한 강연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에서 선언했다. "인간은 자유롭도록 저주받았다." 청중들은 박수를 쳤지만, 그 의미를 진정 이해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로부터 30년 후, 스탠퍼드대학의 로버트 셰어(Robert Sharf) 교수는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학생들에게 24가지 종류의 잼 중에서 선택하게 한 그룹과 6가지 중에서 선택하게 한 그룹을 비교한 것이다. 결과는 의외였다. 선택지가 많을수록 만족도가 떨어졌다.
이것이 바로 사르트르가 말한 '자유의 저주'였다.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지만,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부담이기도 하다. 실존주의 상담에서는 내담자가 이 자유의 무게를 받아들이고, 자신의 선택에 대해 책임질 수 있도록 돕는다.
세 번째 그림자: 근본적 고립
1886년 독일, 19세의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는 친구에게 편지를 썼다. "우리는 모두 혼자서 태어나고 혼자서 죽는다. 그 사이의 시간 동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이 시적 통찰은 100년 후 실존주의 심리학의 핵심 개념이 되었다. 1980년, 욜롬은 자신의 저서 『실존주의 심리치료』에서 '실존적 고립(existential isolation)'이라는 개념을 소개했다. 이는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 있어도 궁극적으로는 혼자라는 인간의 근본 조건을 말한다.
하지만 욜롬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이 고립감이 오히려 진정한 친밀감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보았다. 서로의 고독을 인정할 때, 비로소 진정한 만남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네 번째 그림자: 의미의 부재
1942년, 알베르 카뮈(Albert Camus)는 『이방인』에서 뫼르소라는 인물을 통해 세상의 부조리함을 그려냈다. 주인공은 어머니의 장례식에서도 눈물을 흘리지 않고, 해변에서 아랍인을 이유 없이 죽인다.
카뮈가 그리고자 한 것은 사전에 정해진 의미가 없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이었다. 이 소설이 출간되고 20년 후, 빅토르 프랑클은 정반대의 주장을 했다. "의미가 없다면 만들어내면 된다."
프랑클의 로고테라피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세상 자체에는 의미가 없을지 몰라도, 인간은 자신만의 의미를 창조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한 내담자는 프랑클에게 말했다. "선생님, 저는 삶의 의미를 찾았어요. 바로 의미를 찾는 것 자체가 의미더군요."
다섯 번째 그림자: 불안이라는 선물
다시 키르케고르로 돌아가자. 그는 불안을 단순한 부정적 감정으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불안을 "가능성에 대한 현기증"이라고 불렀다. 미래가 열려있기 때문에, 무엇이든 될 수 있기 때문에 느끼는 감정이라는 것이다.
1950년대, 롤로 메이(Rollo May)는 키르케고르의 이 통찰을 심리치료에 적용했다. 그는 불안을 병리적 증상이 아니라 성장의 신호로 봤다. "불안은 창조적 삶을 살고 있다는 증거"라고 그는 말했다.
한 예술가 내담자가 메이에게 말했다. "새 작품을 시작할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려요." 메이는 답했다. "그 두근거림이 없다면, 당신은 이미 죽은 것과 같습니다."
그림자와 함께 춤추기
오늘날 실존주의 상담사들은 이 다섯 가지 주제를 회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면으로 바라본다. 죽음, 자유와 책임, 고립, 무의미성, 불안. 이 모든 것들이 인간 존재의 그림자이지만, 동시에 성장과 변화의 원동력이기도 하다는 것을 안다.
키르케고르가 레기네를 떠나보내며 느꼈던 불안은 결국 실존주의라는 거대한 사상의 출발점이 되었다. 때로는 그림자가 빛보다 더 많은 것을 가르쳐주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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