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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상담을 위한 가이드

실존적 커리어의 시대

by bogibooks 2025. 7. 21.

실존주의와 커리어의 시대 - 자각, 변화, 그리고 자유 창조의 심리학

시지프스의 신화

 

"인간은 자신이 생각하는 바로 그 인간이 된다."
- 장 폴 사르트르

 

 

카페에서 만난 세 명의 내담자

 

심리상담실 옆 작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오늘 만날 세 명의 내담자를 떠올렸다. 각각 다른 고민을 안고 왔지만, 모두 실존주의가 말하는 인간 본성의 세 가지 특징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사람들이었다. 마르틴 하이데거가 "인간은 존재에 대해 질문하는 유일한 존재"라고 했듯, 오늘 만날 이들도 모두 자신의 존재 방식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있었다.

 

 

첫 번째 이야기, 자각하는 능력

 

"선생님, 저는 35세까지 로봇처럼 살았어요."

 

대기업 마케팅팀 과장인 미나는 상담실에 들어서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입사해 승진 가도를 달려온 그녀였지만, 최근 들어 묘한 공허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어제 회사에서 신제품 론칭 회의를 하는데, 갑자기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치 벽에 붙은 파리가 된 것처럼 회의실을 내려다보는 기분이었죠. 모든 게 무의미하게 느껴졌어요."

 

실존주의 심리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로얄로 메이(Rollo May)는 1950년대 미국에서 "불안의 의미"라는 책을 통해 현대인의 실존적 불안을 분석했다. 그는 인간이 자각 능력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오히려 불안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동물은 본능대로 살면 되지만, 인간은 '왜', '어떻게', '무엇을 위해'라는 질문을 던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미나의 경우가 정확히 그랬다. 그녀가 스스로에게 물었던 질문들이 실존주의자들이 말하는 '자각'이다. 사르트르는 이를 "의식은 항상 무엇인가에 대한 의식"이라고 표현했다.

 

상담 과정에서 미나는 점진적으로 변화했다. 상담을 통해 미나는 그 동안의 불안감을 떨쳐버리고 드디어 자신의 삶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3개월 후, 미나는 광고 에이전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이직했다. 연봉은 줄었지만, 그녀의 표정은 훨씬 밝아졌다. "이제야 제가 누군지 알 것 같아요"라고 웃으며 말하는 그녀를 보며, 로얄로 메이의 말이 떠올랐다.

 

"진정한 의식은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것이다."

 

두 번째 이야기, 끊임없는 변화

 

"선생님, 저는 왜 이렇게 갈팡질팡할까요?"

 

프리랜서 개발자인 준혁은 자신의 잦은 이직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있다.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했지만, 졸업 후 게임회사, 핀테크 스타트업, 현재는 프리랜서까지... 4년 동안 세 번의 커리어 변화를 겪었다.

 

"게임을 좋아해서 선택했는데, 막상 해보니 단순 반복 작업이 대부분이었어요. 창의성을 발휘할 기회가 없더라고요. 그리고 혁신적인 일을 하고 싶어서 핀테크 회사로 옮겼어요. 하지만 회사가 너무 불안정했고, 야근이 일상이었죠. 지금은 자유롭게 일하고 싶어서 프리랜서로 독립했는데, 이번엔 외로움과 불안정함이 문제네요. 너무 의지가 약한 것 같아요"

 

하이데거는 인간을 "Sein-zum-Tode"(죽음을 향한 존재)라고 표현했다. 이는 인간이 유한한 시간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존재임을 의미한다. 또한 그는 "Dasein"(현존재)이라는 개념을 통해 인간은 매 순간 자신의 존재 가능성을 선택하며 살아간다고 설명했다.

 

준혁의 이야기는 바로 이런 실존적 특성을 보여주었다. 준혁은 자신을 "의지박약한 사람"이라고 자책했지만, 실존주의 관점에서 보면 그는 매우 정상적인 인간이었다.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 메를로-퐁티는 "몸의 현상학"에서 인간은 상황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재구성하는 존재라고 했다. 준혁이 한 각각의 선택은 순간의 상황과 욕구에 따른 합리적 결정이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상담을 통해 결국 준혁은 "변화하는 것이 내 본성"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현재 그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경험할 수 있는 IT 컨설팅 회사에서 일하며, 변화를 두려워하기보다는 즐기고 있다.


세 번째 이야기, 자유로운 창조

"선생님, 제가 너무 무모한 건 아닐까요?"

 

전 은행원이었던 은진은 현재 베이킹을 공부하며 카페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 사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그녀의 결정을 만류했다.

 

"대학을 졸업할 때 쯤, 부모님과 주변 모든 사람이 은행을 추천했어요. '여자가 다니기 좋은 직장'이라고 하셨죠. 저도 특별히 하고 싶은 일이 없어서 그렇게 했죠, 그런데 매일 똑같은 일상의 반복이었어요. 고객 상담, 서류 처리, 실적 관리... 기계처럼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러던 차에 2년 전 우연히 베이킹 클래스를 들었는데, 제 손으로 무언가를 만든다는 게 이렇게 즐거운 줄 몰랐어요. 밤새 빵을 구워도 전혀 피곤하지 않았거든요."

 

사르트르는 "인간은 자유롭도록 선고받았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는 인간이 선택의 자유를 가졌지만, 동시에 그 선택의 무게를 져야 한다는 의미였다. 또한 그는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고 주장하며, 인간은 미리 정해진 본질이 없이 태어나 스스로 자신의 본질을 창조해나간다고 설명했다.

 

은진의 이야기는 바로 이런 실존적 자유와 창조의 과정을 보여주었다. 실존주의 심리치료가 빅터 프랭클(Viktor Frankl)은 홀로코스트 생존 경험을 바탕으로 "의미치료법"을 개발했다. 그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는 "의미에 대한 의지"라고 주장했다. 은진의 경우, 베이킹을 통해 비로소 자신만의 의미를 찾은 것이었다.

 

하지만 상담을 통해 은진은 이런 불안들이 자유로운 선택의 자연스러운 부산물임을 이해하게 되었다. 키르케고르가 말한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이라는 표현처럼, 불안감은 오히려 진정한 자유를 행사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6개월 후, 은진은 작은 동네에 "은진's 베이커리"를 열었다. 첫 달은 적자였지만, 3개월째부터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무엇보다 그녀의 눈빛이 완전히 달라졌다.

 

"예전엔 남들이 정해준 틀 안에서 살았다면, 이제는 제가 제 인생의 작가가 된 기분이에요. 매일이 새로운 창작의 연속이거든요."

 

 

실존적 커리어의 시대

21세기는 그 어느 때보다 실존적 선택이 중요한 시대다.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지고, AI와 자동화로 인한 일자리 변화가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실존적 질문을 던져야 한다.

 

프랑스의 철학자 알베르 카뮈는 "시지프의 신화"에서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도 인간은 자신만의 의미를 창조해야 한다고 했다. 마치 영원히 바위를 굴려 올려야 하는 시지프처럼, 우리의 직업 생활도 끝없는 도전의 연속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각하고, 변화하고, 창조하는 능력이야말로 인간만이 가진 가장 큰 자산이다.

 

상담실에서 만나는 많은 내담자들이 "정답이 뭔가요?"라고 묻는다. 하지만 실존주의는 명확하게 답한다. 정답은 없다. 대신 당신만의 답을 만들어가는 것이 바로 삶이다.

 

미나는 자각했고, 준혁은 변화를 수용했으며, 은진은 창조의 길을 선택했다. 그들의 이야기는 아직 진행형이다. 그리고 당신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