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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상담사의 직업상담기

당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때, 변화는 시작된다

by bogibooks 2025. 8. 2.

상담은 사람을 듣는 일

 

 

 

"선생님, 저 정말 모르겠어요. 뭘 해야 할지..."

 

김민수 씨(가명)는 상담실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30대 중반의 그는 10년 넘게 다닌 회사를 그만두고 한 달째 구직 활동을 하고 있었다. 이력서를 몇십 번 넣어봤지만 면접 기회조차 잡기 어려웠고, 점점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었다.

 

"힘드시겠어요. 어떤 부분이 가장 어려우신지 천천히 말씀해 주세요."

 

나는 그에게 물 한 잔을 건네며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일을 시작했다. 듣는 일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직업상담사에게 기대하는 것은 명쾌한 답이다. "당신에게 맞는 직업은 이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취업할 수 있습니다"와 같은 확실한 해답 말이다. 하지만 직업상담의 핵심은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듣는 것에서 시작된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적극적 경청(Active Listening)'이란 단순히 귀를 기울이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상대방의 말에 온전히 집중하고, 그 말 속에 담긴 감정과 의미를 파악하며, 때로는 말하지 않은 것까지 읽어내는 것이다. 이는 상담의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가장 어려운 기술이다.

 

김민수 씨는 처음 30분 동안 자신의 상황을 쏟아냈다. 퇴사한 회사에서의 스트레스, 상사와의 갈등, 미래에 대한 불안감까지. 나는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이야기에 반응했고, 가끔 "그때 어떤 기분이셨을까요?"와 같은 질문으로 그가 자신의 감정을 더 깊이 탐색할 수 있도록 도왔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말을 하면서 스스로 답을 찾아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생각해보니 제가 정말 싫어했던 건 업무 자체가 아니라 소통이 안 되는 조직문화였던 것 같아요." 이런 깨달음은 내가 준 것이 아니었다. 충분히 들어주었을 때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피어난 것이었다.

 

칼 로저스(Carl Rogers)는 인간중심 상담에서 '무조건적 긍정적 관심(Unconditional Positive Regard)'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는 내담자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판단하지 않으며, 진정한 관심을 보이는 것을 의미한다. 직업상담에서도 이 원칙은 매우 중요하다.

 

어떤 내담자는 "나는 공부도 못하고, 특별한 재능도 없어요"라며 자신을 깎아내린다. 이때 "그렇지 않아요, 당신도 분명 장점이 있을 거예요"라고 성급하게 위로하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 그보다는 "지금까지 그런 생각을 갖고 사시기 힘드셨겠어요"라며 그의 감정을 먼저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상담실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각자 다른 배경과 경험을 갖고 있다. 대학을 갓 졸업한 신입사원부터 50대 경력단절 여성까지, 공무원을 꿈꾸는 청년부터 창업을 고민하는 중년까지. 하지만 그들 모두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치유가 시작된다.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 자체가 뇌의 감정 조절 영역을 활성화시켜 스트레스를 감소시킨다고 한다. 이를 '표현적 글쓰기(Expressive Writing)' 연구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말로 표현하는 것도 비슷한 효과를 갖는다.

 

물론 듣기만 하는 것이 직업상담의 전부는 아니다. 적절한 시점에는 정보를 제공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도록 도와야 한다. 하지만 모든 것의 시작은 듣는 것이다. 충분히 들어주지 않고서는 그 사람이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김민수 씨는 두 번째 상담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난번에 와서 이야기하고 나니까 마음이 많이 정리됐어요. 제가 정말 원하는 게 뭔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 것 같아요." 그는 이후 작은 회사의 팀장 자리에 지원해 좋은 결과를 얻었다.

 

상담은 마법이 아니다. 하지만 한 사람의 이야기를 온전히 들어주는 것에는 분명 마법 같은 힘이 있다. 그 힘은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답을 찾을 수 있는 용기를 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직업상담사인 내가 매일 하는 일의 본질이다.